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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역사 진시황릉과 병마용갱

날뛰기대장 2022. 5. 13.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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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진시황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자면,

혼란했던 춘추전국시대의 중국을 최초로 통일해 진나라를 건설한 중국의 첫 번째 황제입니다.

진시황릉의 대단함을 인정받는 이유는 2,200여 년 전 만들어졌는데 사람이 만들었다기엔 거대한 규모의 유적이 진나라 역사는 단 15년인데 비해 진시황의 흔적은 2,0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전해지고 있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습니다.

 

사진 출처  : 고고학 최신 발견, 진시황릉에 ‘동물의 세계’ 있다니! (xinhuanet.com)

 

고고학 최신 발견, 진시황릉에 ‘동물의 세계’ 있다니!

   [신화망 베이징 11월 28일] 최근, 진시황릉박물관 저우톄(周鐵) 선임 엔지니어는 고고학자들은 진시황릉(秦始皇陵)에 대한 최신 시추 작업에서 도로시스템에 대한 국부적인 발굴을 통해 황릉

kr.xinhuanet.com

 

Summary

진시황제의 묘이며 동서 485m, 남북 515m, 높이 76m의 능입니다.

알지 못하고 본다면 능보단 야산처럼 보이는 것이 특징입니다.

황제 즉위 초부터 건설하기 시작하여 중국 통일 후까지 약 30여년 동안 건설하였습니다. 총 12개의 무덤 중 11개는 도굴을 방지한 가짜 무덤입니다.

역사적 배경

진시황은 황제에 오르기 전부터 자신의 묘를 준비했습니다. 기원전 247년 진나라의 황제로 즉위 후 점술가를 통해 가장 좋은 묫자리를 골랐으며 기원전 221년 중국 통일 후 능에 관련된 사업은 본격적으로 추진되었습니다. 전국에서 70만 명의 노동자들이 모여 고분 안에 지하도시를 건설하기 위해 쉬지 않고 평생을 일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능 내부는 도굴을 방지하기 위해 수은으로 강과 바다를 꾸미는 등 하늘과 당을 모방한 내부 설계와 동서남북 사방으로 공간을 나누고 여러 겹의 외부 차단 벽면과 세밀한 시공법으로 습도조절이 가능한 장방형의 지하 비밀궁전을 건축하였습니다. 만약 도군 꿀이 침입하게 되면 화살이 자동으로 발사되는 장치도 설계되어 있다고도 전해지니 내부 보안을 철저히 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1987년 진시황릉은 "병마용갱"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습니다.

 

병마용갱

근처에 저희가 모두 알고 있는 병마용갱이라는 유적이 있습니다.

병마용갱이란 병사, 말, 전차, 등 많은 호위 병사 군대를 실제 크기만큼 정교하게 흙으로 만들어 묻어 둔 흙구덩이며 1,2,3호갱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또한 병마용갱은 진시황을 사후세계에서 지키기 위해 만들어졌고 발굴이 진행중에 있으나 다 발굴되지 않았으며 100년 이상이 더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 유적입니다.

 

발견 배경

1974년 3월, 한 마을의 주민들이 우물을 파다 우연히 흙으로 만든 거대한 사람 얼굴 모양의 토기와 청동 화살촉 등을 발견했습니다. 이후 주민들은 집에 시장에 팔기 위해 집에 보관하였으나 5월경 산시성 고고학팀에 의해 회수되었고 유적 발굴이 시작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총 25,000m2 면적의 병마용갱 4곳을 발견하였으며 가장 먼저 발견된 1호갱은 길이 230m, 폭 62m, 깊이 5m 직사각형이며 이곳에서는 무장하고 있는 키 170~190cm, 약 200kg의 군사들의 도용 1천여개가 발견되었고 이외 발굴되지 않은 유적 포함 약 6천여개 매장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대규모 보병 군단이라 할 수 있습니다. 특이한 점은 발견된 도용의 눈, 코, 입과 수염, 표정, 옷차림, 머리 모양 모두 달랐으며 이를 통해 병사 간 출신지, 신분 차이까지 알아낼 수 있었습니다.

2호갱에서는 기마병 군단으로 수 십대의 나무 전차와 마용, 궁노병과 기마병, 전차병의 다양한 도용이 발견되었습니다.

3호갱에서는 1,2호갱 보다는 다소 작은 규모이며 지휘관으로 추정되는 장군용과 수십 개의 군사용이 발견되어 지회 붐벼 역할을 했던 곳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병마용은 처음 발굴되었을 때 채색된 상태였지만 햇볕에 노출된 직후 색이 바래 흙색으로 변해버리게 되었습니다.

나아가 청동으로 만든 사람, 말과 마차가 발견되었는데 1,000kg의 청동 마차는 수 천개의 부품으로 만들어졌고 금과 은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은 진시황이 생전 타던 마차를 축소해 만들어 넣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Other Story

진시황릉과 병마용갱의 많은 부분과 특히 관이 들어있는 매장실과 내부는 아직까지 발굴되지 않았습니다. 이와 같은 이유는 중국 정부 차원에서 완벽한 발굴 기술이 개발될 때까지 발굴하지 않고 후손을 위해 보존하기 위함이며 수천 년 간 이어져 온 살아있는 문화유산을 파괴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 이며 유적을 모두 발견하는 데는 수십 년 이상이 걸릴 것으로 예상합니다.

 

추가로 진시황릉 축조 당시 모든 조각한 병마용마다 제작자 이름이 표시되어있어 잘못 만든 기술자의 경우 엄벌에 처했다고 하니 얼마나 정교하게 작업 되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을 위해 수만 명의 순장자가 매장되고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거대한 공사가 2,000년 전 이루어졌다는 게 믿기 어렵고 엄청난 역사적 가치가 있는 유물들이 매장되어 있다는 것이 고고학적 큰 의미를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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